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두아르트 보겔 폰 팔켄슈타인 (문단 편집) === 보오전쟁과 보불전쟁 === 보오전쟁이 발발하자, 팔켄슈타인은 서쪽에 있던 독일군을 지휘하였다. 팔켄슈타인은 마인강 근방에서 오스트리아와 오스트리아의 연합군을 상대했다. 팔켄슈타인은 하노버 왕국의 카셀을 점령하였다. 하지만 팔켄슈타인의 리더쉽이 뛰어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. [[헬무트 폰 몰트케|몰트케]]는 팔켄슈타인으로 하여금 하노버 군대를 끝장내라고 명령하였으나, 팔켄슈타인은 보급의 부재로 항복을 받고 싶어했다. 이에 분노한 [[빌헬름 1세]]와 몰트케는 팔켄슈타인이 하노버 왕국군을 강하게 공격하기를 원하였다. 하지만, 하노버 왕국군은 보급의 부재로 고통받고 있었으며, 팔켄슈타인의 느린 진격에도 꽤나 겁먹고 있었다. 팔켄슈타인도 금방 전투를 이길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. 하지만, 팔켄슈타인에게 날라온 것은 [[랑엔잘차 전투]]의 패배했다는 사실었다. 다음날 도착한 팔켄슈타인은 다행히도 하노버 왕국의 항복을 얻어냈다. 여하튼 이일로 팔켄슈타인은 많은 양의 돈을 받았다. 이후에도 참모부와의 충돌로 팔켄슈타인은 해임되고, [[에트빈 폰 만토이펠]]으로 교체되었다. 그리고, 팔켄슈타인은 보헤미아의 총독이 되었다. 보불전쟁이 발발하였을때, 팔켄슈타인은 하노버에 거주하며, 독일 해안 지역의 방어를 조직하였다. 그리고 민병대로 구성된 해상방어대(Seewehr)를 구성했다. 그 공로로 1급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. 1873년 전역하고, 1885년 사망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